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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사

문자의 발달 & 한글 구조 및 특성

by memango 2024.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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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처음 시작은 사람의 음성입니다.

소리를 내어 위험을 알리고 표현을 하며 공감을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서로 소통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음성형태의 소통으로는 일회적이며 지속성이 없었습니다.

특히나 화자가 있으면 청자가 있어야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특히나 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금 더 영구적이고 간접적인 전달을 연구했고 기호로 표시할 수 있는 문자가 고안되었습니다.

 

문자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삶은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문자를 효용하고 일의 개념을 성립할 수 있고 그것을 전달도 가능했습니다.

차원이 높은 사상과 이론을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언어생활은 생각을 다듬어 개념을 형성하게 했고 문자 생활은 이러한 개념을 축적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었습니다.

문자의 발달은 처음은 형상에서 시작하여 표기를 하다가 나중에는 추상화 단계를 거치고 나아가 개념화되고 기호화되었습니다.

 

한국어 또한 처음에는 음소문자로 출발을 했었으니까요. 특히 한글은 세계 문자의 역사상 가장 희귀하고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너무나 자랑스러운 우리 한글입니다.

 

문자의 기원

고고학적 탐구에 따라 문자의 기원은 음성 언어의 음소적 표상이 아닌, 행동을 나타내는 그림 같은 회화적 표상으로부터 출발을 했을 것이라고 파악이 됩니다.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위험으로부터 조심하라는 의사전달의 필요에 의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문자의 단초로 보입니다.

이러한 그림문자는 예로 들어 '집에 먹을 것이 없다'라는 표현과 '먹는 행위'와 같은 표현을 위주로 쓰였을 것입니다.

그림문자이기 때문에 실존하는 사물이나 형상화가 가능한 개념들 같은 경우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나타내기 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름이나 고유 명사를 표시할 경우에는 표기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을 지칭할 때에도 고유명사를 지칭할 때에도 음성의 형태가 단순하고 지속적으로 불리게 되는 형태를 가졌으니, 단어의 소리에 대해서 문자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이 고유 명사를 지칭하고 싶어서? 부터가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한글 창제 이전

우리나라도 선사시대에 암각화가 있었지만 우리가 한글 창제 이전에 문자생활을 한 것을 말하자면 아무래도 중국의 한자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기에 한자 사용은 한자가 표의 문자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말에 대한 표기를 했다기보다는 우리가 말을 할 때에 의사표현의 정도로 쓰였다고 봐야 합니다.

어휘차원에서는 우리 고유명사를 한자의 음을 사용하였었고, 문장 차원에서는 우리나라말의 어순으로 한자를 배열하여 표현하는 통사 구조를 반영했었습니다.

 

이를 차자 표기라고 합니다. (차자 표기 :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나라말을 기록하는 표기하는 방법)

차자 표기는 쓰이는 성격에 따라서 향찰, 구결, 이두 등으로 분류됩니다.

 

*향찰

향가를 기록할 때 사용되었던 차자 표기를 말합니다. 한자의 차훈과 차음 사용하여 향찰을 표기할 때에는 실사에 대해서는 차훈을 사용하였고 문법 형태에 사용할 때에는 차음을 쓰는 경우가 일반적 표현이었습니다.

다소 사용방법이 복잡하고 어려웠기 때문에 널리 쓰인 표기는 되지 못하고 그쳤습니다.

 

*구결

한문 원본의 상태에 옆에 작은 토(관계사)를 달아 우리식으로 읽은 독법입니다.

읽는 독법에 따라 역독 구결과 순독 구결로 나뉘는데 역독 구결은 한국어 어순으로 읽어 내려가기 때문에 한자도 훈독하는 경우가 있고, 순독 구결은 읽어 내려가면서 토(관계사)만 붙여서 읽는 방법입니다.

 

*이두

이두는 우리나라말 어순에 의해 표기한 것을 말합니다.

실사에서는 한자 어휘를 그대로 쓰고, 문법의 형태에서는 구결처럼 차자 표기를 하여 나타낸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두문 : 한자 원문에 대해서 이두문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 말을 이두문으로 적을 수도 있습니다.

 

한글창제

훈민정음은 세종 25년(1443) 음력으로 12월에 창제되어 반포하였습니다.

세종 본인이 주도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하였고 집현전 학자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세종은 문자의 음운학에 대해 남다른 조예가 깊었습니다.

당시에는 중국, 인도, 몽골 등의 나라에서 음운학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있었는데 이에 대한 세종의 조예는 조선에서 가장 으뜸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종은 우리나라의 문자의 재정이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으로 문자를 창제한다는 것에 대해 반발이 많았습니다. 여러 유생들의 집요한 반대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종은 불굴의 의지로 차질 없이 한글창제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배경>

훈민정음에 영향을 준 배경에는 중국의 성운학이 있었습니다.

표음적인 부분의 장체에 대해서는 인도의 실담 문자와 원나라의 파스파 문자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말의 구조에 맞는 음소 문자로서는 아예 다른 길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훈민정음은 초성과 종성으로 자음과 모음을 구분하고 칠종성법으로 변이음 관계를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자음의 모양들은 발음 기관의 조음 형태에 근거하여 만들어졌고 모음의 분류는 구설(입과 혀)의 조음 작용에 근거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언어학사에서는 경이롭다고 밖에는 표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훈민정음 구조와 특성>

훈민정음은 초성 17자 중성 11자로 이루어져 있고 음소 단위가 아닌 문자 단위입니다.


*자음 24자

ㄱ(기역) ㄴ(니은) ㄷ(디귿) ㄹ(리을) ㅁ(미음) ㅂ(비읍) ㅅ(시옷) ㅇ(이응) ㅈ(지읒) ㅊ(치읓) ㅋ(키읔) ㅌ(티읕) ㅍ(피읖) ㅎ(히읗)
ㅏ(아) ㅑ(야) ㅓ(어) ㅕ(여) ㅗ(오) ㅛ(요) ㅜ(우) ㅠ(유) ㅡ(으) ㅣ(이)

*복합 자모

ㄲ(쌍기역) ㄸ(쌍디귿) ㅃ(쌍비읍) ㅆ(쌍시옷) ㅉ(쌍지읒)
ㅐ(애) ㅒ(얘) ㅔ(에) ㅖ(예) ㅘ(와) ㅙ(왜) ㅚ(외) ㅝ(워) ㅞ(웨) ㅟ(위) ㅢ(의)

*자모의 순서

자음 : ㄱ ㄲ ㄴ ㄷ ㄸ ㄹ ㅁ ㅂ ㅃ ㅅ ㅆ ㅇ ㅈ ㅉ ㅊ ㅋ ㅌ ㅍ ㅎ
모음 :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ㅜ ㅝ ㅞ ㅟ ㅠ ㅡ ㅓ ㅣ

표음에 있어서는 병서와 연서, 상합등의 문자 조합에 의해 다른 소리 단위를 나타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훈민정음은 기본적인 문자의 성격을 갖추었습니다.

이 말은 훈민정음 문자의 조직이 열린 집합의 성격을 지녔고 이러한 성격이 국어뿐이 아니라 중국어, 범어, 일본어, 몽골어 등의 주변 언어에 대한 표기의 필요성에 대해 다양한 음성 표기의 가변성을 대비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갖췄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위대한 말이 처음부터 각광받고 사랑받으며 쓰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식계층을 담당하는 양반들은 여전히 한문을 사용하였고 공식 문서 역시 한문이나 이두문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훈민정음은 서서히 아주 강하고 선명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고 점차 쓰임이 발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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